회차와 벤치마크
PART 04·of 06

회차가 쌓이면 산업이 보인다

한 번의 설문조사는 한 장의 사진입니다. 설문조사가 쌓이면 한 회사의 시간 축이 되고, 같은 업종의 회사들이 모이면 분포 위의 자리가 됩니다. 같은 기준으로 잰 사진들만이 비교를 만듭니다.

정윤환
정윤환Founder · 2026년 6월 6일 · 7

1 년 뒤 같은 설문을 다시 띄웠고, 점수가 올랐습니다. 그런데 작년과 올해가 같은 응답을 다르게 채점하고 있었습니다. 같은 기준으로 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뜻입니다. 회의실의 반응이 묘했던 이유입니다.

OpenKnock Culture Ladder 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박아두어야 했던 약속이 하나 있었습니다. 이번 설문조사와 다음 설문조사 사이에 기준이 바뀌면 안 된다. Culture Ladder 가 자기 약속을 설문조사 사이에 어기면, Culture Ladder 로 잰 시간은 그 자리에서 거짓이 됩니다.

01 · Same Yardstick

기준은 그대로, 질문만 바뀐다

Culture Ladder 를 가르면 4 단의 계층이 보입니다. 대주제 → 소주제 → 행동 → 질문. 그 중 설문조사마다 다듬는 자리는 사실 가장 아래의 질문 한 줄입니다. 회사가 새로 마주한 위험에 맞춰, 새 라인의 작업이든 새 협력업체와의 인터페이스든, 질문의 문장은 매번 손이 갑니다. 그런데 그 질문이 매겨지는 위의 세 칸, 대주제 · 소주제 · 행동 은 설문조사 사이에도 회사가 바뀌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.

이 위의 세 칸이 측정의 기준입니다. 이전 편에서 박은 지도가 바로 그 정체이고,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이 어느 단계의 것인지가 단계 값으로 박혀 있습니다. 기준은 Culture Ladder 가 살아 있는 동안 설문조사 사이에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. 새 위험이 등장해서 새 질문이 추가되어도, 그 새 질문은 기준 위의 어딘가에 떨어질 뿐 기준 자체를 흔들지는 않습니다.

기준이 회사를 따라 바뀌면 측정이 아닌 채점이고, 설문조사를 따라 바뀌면 측정이 아닌 광고입니다.

그래서 한 번의 설문조사가 끝나는 순간, 시스템은 그 설문조사의 기준을 통째로 한 번 더 떠둡니다. 본사가 원본 지도를 이후에 다듬어도, 이 설문조사의 결과는 그때 그 기준 위에 그대로 남습니다.

02 · The Target Rung

학년이 다른 시험을 한 자리에서 보지 않는다

초등학교 1 학년에게 5 학년 시험을 내면 점수가 낮습니다. 그런데 그 점수를 보고 “이 아이는 공부를 못합니다” 라고 결론 내리면, 측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측정을 읽는 사람이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.

회사도 같은 결입니다. 안전문화는 한 번에 다 오를 수 없습니다. 2 편의 NEN 다섯 칸을 떠올리면 됩니다. STEP 1 (병적) · STEP 2 (반응적) · STEP 3 (시스템적) · STEP 4 (사전 예방적) · STEP 5 (선도적). STEP 2 에 머무는 회사에 STEP 4-5 의 행동을 요구하는 질문을 들이대면 점수가 낮은 건 당연하고, 그 결과를 보고 회사를 다그치는 건 측정의 자리가 아닙니다.

그래서 기준이 단계별로 박혀 있습니다. 모든 행동 문항이 어느 단계의 것인지가 설계 시점에 이미 정해져 있고, 설문조사마다 그 회사가 도전하는 도약 목표 (target_step) 가 따로 정해집니다. 첫 번째 설문조사는 STEP 3, 다음은 STEP 4 같은 식으로, 같은 설문지 위에서 도약 목표만 한 칸씩 올라갑니다. 사다리를 한 번에 다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결과 화면이 아니라 데이터 구조 에 박혀 있는 셈입니다.

이 도약 목표는 설문조사가 시작되는 순간 설문조사 메타데이터에 굳습니다. 설문조사가 끝난 뒤 누군가 “올해 목표는 사실 4 였어요” 라고 말할 수 없게, 설문조사가 열린 순간에 한 번 박히고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.

03 · Round vs Round

결과지 위의 작년과 올해

병원이 건강검진 결과지를 한 장만 줄 때와, 작년 수치를 옆에 같이 인쇄해서 줄 때의 무게는 다릅니다. 콜레스테롤 220 이 작년에는 240 이었다면, 그 한 줄이 환자의 다음 행동을 바꿉니다. 그런데 보통의 조직문화 보고서는 작년 결과지가 어딘가 PDF 폴더에 있고, 올해 결과지가 단독 사진으로 회의실에 놓입니다.

Culture Ladder 를 만들면서 이 자리에서 결정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. 같은 회사의 결과 화면은 한 번의 설문조사 단독으로 닫지 않는다. 기준이 설문조사 사이에 같다는 § 01 의 약속이 시스템 안에 박혀 있어, 두 설문조사의 점수는 지도 위의 같은 한 점에 떨어져 있습니다. 그러면 그 두 점수를 한 화면에 같이 얹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. 대주제 단위에서도, 소주제 단위에서도, 개별 행동 단위에서도, 어디서 올랐고 어디서 떨어졌는지가 한 자리에서 보입니다.

한 번의 진단은 사진입니다. 설문조사가 쌓이면 비로소 영상이 됩니다.

설문조사 한 번이 한 장의 사진이라면, 세 번의 설문조사가 쌓이면 회사는 자기 시간 축 위에 자기 모습을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. 첫 번째 설문조사 STEP 3 미달 → 두 번째 설문조사 STEP 3 충족 → 세 번째 설문조사 STEP 4 도전. 같은 기준, 같은 지도, 같은 단계 값. 회사의 움직임이 한 줄의 통계가 아니라 한 페이지의 영상으로 잡힙니다.

04 · Within the Sector

모의고사 백분위의 자리

고등학교 모의고사 80 점이 좋은 점수인지 나쁜 점수인지는 같은 시험을 본 사람들의 분포 안에서만 잡힙니다. 80 점이 전국 30% 인지 5% 인지가 보여야, 다음 시험의 목표가 정해집니다.

회사가 자기 시간 축을 갖기 시작하면, 같은 기준을 쓰는 다른 회사들과의 비교가 비로소 가능해집니다. 다만 모든 회사를 한 자리에 모으면 안 됩니다. 자동차 부품 회사와 종합상사를 같은 분포에 얹으면 점수의 의미가 깨집니다. 업종 안에서의 분포여야 한 회사의 한 점이 의미를 갖습니다.

  • 같은 기준. 지도가 회사 간에 동일하기에, 점수의 비교가 깨지지 않습니다.
  • 같은 단위. 사업장 × 응답자 분류 × 분석 대상의 좌표가 회사 간에 같은 형태를 갖기에, 비교가 평균 한 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.
  • 같은 설문조사 호흡. 설문조사마다 기준이 굳는다는 약속이 회사 간에 공유되기에, 업종의 시간 축이 비로소 만들어집니다.

그 분포 위에 서면 “우리 회사 STEP 3 점수 0.78” 의 의미가 비로소 잡힙니다. 0.78 이 우리 업종의 중앙값인지, 상위 사분위인지, 하위 사분위인지가 보여야 다음 설문조사의 도약 목표를 회의실의 직감이 아니라 분포의 자리 로 정할 수 있습니다.

Culture Ladder 를 만들면서 동시에 사업으로 가져가는 입장에서 보면, 한 회사의 설문조사 한 번을 파는 것보다, 같은 업종의 회사들이 모여 분포가 만들어지는 자리가 결국 Culture Ladder 의 진짜 무게가 잡히는 곳입니다. 새로 합류하는 회사가 첫 번째 설문조사부터 자기 자리를 분포 위에서 본다는 것. 그 자리가 만들어지면 한 회사의 시간 축이 업종의 시간 축으로 이어집니다.

다음 두 편은 이 분포 안쪽으로 한 번 더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. 응답자가 정직하게 답할 수 있는 조건과, 쌓인 응답을 도메인 안에서만 정리하는 AI 의 자리.

글쓴이

정윤환

정윤환

Founder

schemalism 을 운영합니다. 엔지니어의 시점에서 사업을 펼치고, 가설을 직접 검증해 더 큰 단계로 실현해 가는 일을 즐깁니다. 코드와 비즈니스가 만나는 자리에서 매번 다음 한 칸을 잡아냅니다.

이 글이 속한 시리즈

조직문화, 진짜 측정할 수 있을까?

OpenKnock Culture Ladder 는 안전문화를 진단하기 위한 설문조사 프로그램입니다. 기준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다. 네덜란드 안전문화 인증 표준 NEN SCL 의 5 단계 사다리를 그대로 들고, 회사가 다섯 칸 중 어느 칸에 있는지를 매 회차 같은 기준으로 다시 잽니다. schemalism · RIMS · LRQA 가 함께 지었고, 현대모비스 · 금호석유화학 ·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약 15,000 명의 응답으로 같은 기준 위에 자기 자리를 박았습니다. 측정과 변화 사이에서 본 것들을 여섯 편으로 묶었습니다.

전체 편

06

  1. 분위기와 문화는 다르다

    PART 01

    분위기와 문화는 다르다

  2. 표준에서 가져온 다섯 칸

    PART 02

    표준에서 가져온 다섯 칸

  3. 측정의 핵심

    PART 03

    측정의 핵심

  4. 회차와 벤치마크

    PART 04

    회차와 벤치마크

  5. 도메인 안의 AI

    PART 05

    도메인 안의 AI

  6. 측정에서 변화로

    PART 06

    측정에서 변화로